사랑의 도시 아그라Ag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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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세상을 날다
알고 떠나자/인도India

사랑의 도시 아그라Agra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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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Agra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인도의 상징이자 인도를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 인도 현지의 커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건축물이다. 인도의 마지막 봉건왕조였던 무굴제국의 수도이며 약 200여 년간 대륙을 호령하던 고도이자 불세출의 건축물 타지마할로 인해 인도여행의 필수 방문지로 유명하다.

 

타지마할TajMahal

인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로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외사촌 동생이자 세 번째 부인이었던 황궁의 보석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뭄타즈 마할의 묘이다. 샤 자한 왕은 영토 확장을 위한 원정길에 뭄타즈 마할 왕비를 대동했고 당시 만삭이었던 뭄타즈 마할은 막사에서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상심한 샤 자한 왕은 본국으로 돌아와 백성들에게 2년 동안 왕비를 추모하는 기간을 갖도록 하였고 화려한 무덤을 건설해 그녀에게 바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뭄타즈가 죽은 이듬해인 1632년 시작된 공사는 22년이나 이어졌다. 샤 자한 왕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이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 것을 염려해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타지마할은 기하학에 기초를 둔 건물이다. 거대한 정사각형 정원이 수로와 길을 따라 넷으로 나뉘며 각 공간들은 다시 사등분된다. 수로 끝에 있는 타자미할 묘궁은 중앙 돔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서 있는 첨탑은 바깥쪽으로 약간 휘어지게 세워졌는데 이는 안구의 굴곡을 고려해 첨탑을 직선으로 보이게 하고 지진으로 첨탑이 무너져도 묘궁을 파괴하지 않도록 한다. 묘궁은 중앙을 둘러싸는 4개의 묘실을 가지고 있다. 건물이 완성될 당시에는 뭄타즈 마할의 묘만 있었지만 현재는 샤 자한 왕과 함께 잠들어 있다. 타지마할 본당 내부의 묘는 가묘이며 진짜 무덤은 도굴을 염려해 본당 지하에 은폐되어 있다.

타지마할

 아그라 성Agra Fort

1566년 무굴의 제3대 황제인 악바르에 의해 건설되고 그의 손자인 샤 자한 왕의 손을 거쳐 재건축 되었다. 무굴제국 당시의 왕궁으로 무굴제국의 강대한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물답게 20m의 엄청난 높이와 2.5Km의 길이의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이다. 건설 당시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탓에 군사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악바르 이후, 제항기르와 샤 자한의 평화로운 치세가 이어져 이곳에서 외국과의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건축 광으로 불리는 5대 황제 샤 자한은 황제가 된 이후에 아그라 성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궁전으로 변모시켰고 말년에는 이곳에 유폐된 채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그라 성 입구

제항기르 팰리스Jehangir’s Palace

악바르 황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인 살림(제항기르의 아명)을 위해 지은 건물로 인도-아프간 양식의 건물로, 건물 외관은 전형적인 아프간 형식을, 내부의 안뜰은 구자라트나 라자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하라지 궁전과 흡사하다. 이런 혼합된 건축 양식은 자이푸르의 공주를 정실로 들일 정도로 힌두와의 융합을 중요시했던 악바르의 성향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제항기르 팰리스는 악바르 시대에 지어진 궁전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물로 손꼽힌다. 특별 궁전을 지어줄 만큼 어렵게 얻은 제항기르와 악바르의 사이는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 샤 자한 왕을 아그라 포트에 가둔 아우랑제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 방법이 첫째 아들에게 무조건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아닌 철저한 능력 검증에 의해 후계자를 결정해서 혈육 간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포토의 탑이란 뜻을 가진 무삼만 버즈는 샤 자한이 1666년 숨을 거두기까지 8년 동안 갇혀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아그라 포트에서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하며 아내의 묘지를 바라보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Itimad-ud-daula

타지마할과 비슷하여 베이비 타지혹은 리틀 타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제항기르 왕의 장인 미르자 기야스 백이 무덤이다. 타지마할에 사용된 피에트라 듀라 기법을 인도 최초로 사용한 곳으로 타지마할이 생기기 전까지는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손꼽혔다.

 

파테뿌르 시크리Fatehpur Sikri

아그라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고대 도시 파테뿌르 시크리는 16세기 무굴 제국의 왕 악바르에 의해 건설되었다. 후사가 없었던 황제는 날마다 다른 이에게 제국을 물려줘야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빠졌고 이슬람교 성자 셰이끄 살림 치스띠를 찾아 답을 구했다. 성자로부터 이듬해 자신이 후사를 얻을 거라는 예언을 들은 뒤 정말로 아들을 얻은 후 성자가 사는 파테뿌르 시크리로 수도를 옮겼다. 하지만 물이 부족한 도시였기 때문에 수도로써의 기능은 고작 14년뿐이며 그 후 400년 동안 잊힌 도시로 방치되었다. 문학과 건축,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악바르는 종교 대통합을 꿈꾸며 이슬람과 힌두교의 요소들을 혼합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도시를 구상했다.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인도에서 가장 웅장한 모스크 중 하나로 1571년 완공되었다. 전형적인 이슬람의 모스크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악바르 왕이 구자라트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문을 확대 개조한 불랜드 다와자Buland Darwaza가 사원의 입구로 승리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자마 마스지드 안뜰에 대리석으로 만든 묘는 후사가 없던 악바르 왕에게 후사를 얻을 것을 예언한 셰이끄 살림 치스띠의 묘이다.

 

왕궁 구역Royal Palace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아그라의 유적지와는 다른 느낌을 주며 관람 구역이 제한되는 아그라 성보다 볼거리 면에서 더 풍부하다. 왕과 왕비들이 거주하던 궁전과 접견실은 물론 방문한 손님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마구간, 정원, 물탱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건물들을 연결하는 통로와 효율적인 배수 시스템은 악바르 왕이 도시 기획 단계부터 고심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왕의 개인 면담소로 종교와 종파, 사상에 구애받지 않았던 악바르 황제에 의해 무굴 르네상스가 만개했던 곳으로 디와니카스Diwan-i-Khas가 있으며 궁중 여인들의 거주 공간인 판츠 마할Panch Mahal 등이 있다. 악바르 왕에게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기독교도인 세 아내가 있었는데 가장 화려한 궁전인 조디 바이 궁전Jodhi Bai Palace은 힌두교 아내가 살았다. 힌두교스타일의 기둥과 이슬람의 둥근 지붕, 페르시아식의 푸른 지붕 타일이 혼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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