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들의 땅 룩소르Lux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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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떠나자/이집트Egypt

파라오들의 땅 룩소르Luxor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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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Luxor

이집트 문명사를 살펴보면 테베만큼 세력이 강하고 후세에 귀중한 유산을 남긴 도시는 없다. 수천 년 전의 궁전에서부터 근대에 발견된 고고학적 발견까지, 테베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곳이다. 이 찬란했던 옛 도시는 아랍어로 룩소르라고 불린다. 룩소르는 중왕국 · 신왕국, 그리고 말기 왕조 시대의 한 시기에 수도로서 번영했다. 수도로 정해진 것은 중왕국 시대 제12왕조이며 전성기는 신왕국 시대의 제18~20왕조이다. 중왕국 시대까지는 피라미드 콤플렉스처럼 무덤과 장제전, 하안 신전이 일체로 되어 있었으나 신왕국 시대에는 왕가의 골짜기와 같은 암굴 분묘와 핫셉수트 여왕 장제전이 대표적인 신전으로 나뉘어졌다.

 

룩소르 신전Luxor Temple

룩소르 신전은 이집트의 신전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힌다. 이 신전은 아멘호텝 3세에 의해 지어졌는데 그의 뒤를 이은 아케나톤은 부친의 유업을 잇지 않고 종교개혁은 단행하여 아문 신을 배척하고 태양신 아텐을 숭배하며 2천 년 간 내려온 이집트의 전통을 뒤집었다. 17년 후 아케나톤이 세상을 뜨자 그 뒤를 이은 투탕카멘과 호렘헵은 룩소르 신전을 재정비하였다. 카르나크의 부속신전으로 테베의 3(아문, 무트, 콘수)에 바쳐진 이 신전은 아메노피스 3세 때 시작하여 람세스 2세 때 완성되었다. 예전에는 카르나크 신전과 스핑크스가 양옆으로 늘어선 참배 길로 연결되어 있다. 정면이 제1탑문이며 여기에는 2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1개뿐이며 나머지 1개는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세워져 있다. 유럽 각지에는 이집트의 여러 곳에서 갖고 간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Temple of Karnak

이집트 최대의 신전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가로 1.5Km, 세로 0.8Km의 터에 거대한 열주, 다주식 홀, 석상, 제단, 오벨리스크 등이 들어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신전이다. 고대 이집트의 고왕국이 몰락하고, 테베를 수도로 한 중왕국 시대가 열리면서 테베의 지역 신이었던 아문신이 새로운 국가 신으로 추앙 받기 시작했다. 카르나크 신전은 아문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고왕국 시대에는 왕 자신이 신었으나, 신왕국 시대가 되면서 파라오는 이른바 아문 신의 비호를 받는 존재로 되었다. 그 때문에 역대 파라오는 아문 신 신앙의 땅에 신전, 오벨리스크, 신의 동상 등을 기부하였다. 처음 신전이 지어졌던 중왕국 초기인 B.C 2000년경 제12왕조의 센우스레트1세 때에만 해도 지금처럼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B.C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추가로 신전, 석상 등을 세우면서 지금처럼 큰 규모가 되었다.

 

 룩소르박물관Luxor Museum

룩소르 인근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투트모세3세나 아멘호테프 3세의 동상이 있고 미국에서 가져온 람세스 1세의 미라도 있다. 그밖에 카르나크의 이크나톤 신전에서 뜯어온 Talatat’s wall로 길이가 18m에 달하며 아문 신을 버리고 아텐 신을 섬겼던 파라오 이크나톤이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와 더불어 아텐 신에게 예배드리는 부조들이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 복원되어 있다.

 

미라 박물관Mummification Museum

이집트 사람들은 대자연의 규칙에 따라 생명도 순환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단지 영혼이 잠시 육신을 떠나는 것일 뿐이므로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영혼이 다시 돌아와 부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미라를 이집트 사람들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제1왕조의 무덤에서는 아마포로 싸맨 시체의 일부가 발견되었고 완전하게 미라로 발견된 것은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조세르왕이었다.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카르나크 신전과 더불어 룩소르 최대의 유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태양이 지는 나일강 서안의 사막은 고대 이집트인에게 있어서 저승이 있는 장소이며 무덤이었다. 신왕국 시대가 되자 파라오들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룩소르 서안의 깊숙한 골짜기에서 사후에 안주할 땅을 찾았다. 그러나 도굴꾼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대부분의 왕묘는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모든 무덤은 신왕국 시대에 바위를 뚫어 만든 것이다. 왕가의 계곡에는 투탕카멘, 람세스 3, 람세스 6, 아메노피스 2, 투트모스 3세 등 60여개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

신왕국 시대 절정기의 왕인 아멘호테프 3세의 것으로 좌상 뒤편에 그의 장제전이 있었으나 이후의 왕들이 석재로 사용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는 그리스 신전의 멤논의 것이라고 하여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멤논의 거상

핫셉수트 신전Temple of Hatshepsut

이집트 최초의 여왕 핫셉수트는 남편인 투트모세 2가 죽은 후 아직 어린 투트모세 3세의 섭정으로 되었으나 그 후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바위산을 뒤로 하고 거대한 3층의 테라스식 신전은 그녀가 만든 가장 독창적이고 웅장한 신전으로 이곳의 벽화에는 그녀가 통치기간 중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핫셉수트 신전

 메디나트 하부(람세스 3세 장제전) Temple of Medinat Habu

카르타크 신전의 명성에 가려 이름조차 생소한 이 복합신전은 규모가 카르나크 신전에 견줄 만큼 엄청나다. 이 신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단지 돌을 얻기 위한 채석장에 불과했으나 콥트 기독교가 융성하던 시기에 교회로 이용되면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게 되었다.

 

라메세움(람세스 2세 장제전)Ramesseum (Mortuary Temple of Ramses II)

람세스 2세는 아문 신을 모시던 세티 1세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내세의 축복을 위해 세운 신전이다. 이 신전은 그의 통치기간 초기에 시작되었으며 완성되기까지 약 20년이 걸렸다. 이 신전은 아부심벨 신전이 경이로움과 경쟁하기 위해서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두 신전의 부조는 아주 흡사하며 건축 구조는 메디나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 장제전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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