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Delhi
델리는 고대의 향기와 전근대적인 혼란, 그리고 세련된 현대적 모습들이 별다른 이질감 없이 한데 어우러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함으로 다가온다. 1,7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인도이 수도 델리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도시로 17세기 붉은 사암으로 세워진 올드델리는 여전히 수백 년 된 이슬람 제국의 흔적을 품고 있고, 영국이 건설한 뉴델리의 푸른 잔디 공원과 건물들 사이사이에는 여유가 넘친다.
올드델리Old Delhi
17세기 무굴 제국 황제 샤 자한은 아그라에서 지금의 올드델리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해 ‘샤자하나바드’를 세웠다. 도시 중심에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 자마 마스지드와 레드 포트를 건설하고 성벽으로 올드 포트를 에워쌌다.
찬드니 촉 Chandni Chowk
찬드니 촉은 샤자하나바드 시절에 가장 번화했던 거리로 샤 자한의 딸인 자하나라 베굼 사힙이 디자인 했다고 현재는 찬드니 촉과 그 일대의 시장을 통칭하는 지명으로 쓰인다. 길 위에는 작은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고 혼잡하다보니 찬드니 촉에 대한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편이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원 중 가장 유명한 곳은 16세기 자이나교 사원인 디감바라 자인사원Digambara Jain Temple이다, 일명 새들이 병원으로 알려져 잇는데 18세기 자인 성자에 의해 다친 새에 대한 치료가 시작된 이래, 새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탓에 다친 새들이 알아서 날아온다고 한다. 1650년에 건설된 중간 규모의 모스크로 샤 자한의 아내중 한명이었던 파테푸리의 이름을 따 건설한 파테푸리 마스지드Fatehpuri Masjid가 있다.
레드 포트Red Fort
1638~1648년 사이에 타지마할을 지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붉은 사암으로 건설한 요새다. 샤 자한 왕이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를 당하고 아그라 포트에 갇히면서 레드 포트 가 빛을 보지 못했다. 19세기 델리를 침략한 영국은 이곳을 군용 막사와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완공 이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대리석 상감을 비롯한 내부 장식들은 약탈을 당했다. 한때 번성했던 무굴 제국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웅장한 건물과 넓고 푸른 정원을 볼 수 있다.
라호르 게이트Lahore Gate
붉은 성의 입구로 라호르는 현재 파키스탄으로 편입된 도시로 무굴 대제국 시절 내내 델리, 아그라와 함께 ‘무굴 3경’이라 불렸다. 문의 방향이 라호르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자마 마스지드Jami Masjid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의 최후 걸작으로 인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모스크로 약 25,000명을 수용할 있다. 붉은 사암과 하얀 대리석을 사용한 메인 기도 홀, 높이 솟은 두 개의 첨탑 중 남쪽 첨탑 미나렛은 개방되어 있어 모스크와 올드델리, 멀리 뉴델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모스크 출입구는 서쪽을 제외하고 동, 남, 북쪽에 있는데 과거의 왕들은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동쯕 출입구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인도 사원은 그렇듯 신발은 벗어야 하며, 반바지 차림은 입장할 수 없다.
라즈가트Raj Ghat
1948년 암살을 당한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로 화장이 진행된 지점은 검은 대리석 연단으로 되어 있다. 국경일 및 간디가 사망한 날에는 이 지역이 폐쇄되기도 하며 근처에 있는 국립 간디 박물관에는 간디의 소지품과 사진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뉴델리New Delhi
올드델리 남쪽에 있는 뉴델리는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도의 독립이 이루어져 델리는 독립된 인도의 수도가 되었다.
빠하르간지Pahar Ganj
인도 배낭여행자의 집합소로 인도 여행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보고 들릴 법한 곳이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상점, 여행사, 식당들이 밀집되어 있다.
코넛 플레이스 Connaught Place
델리 최대의 상업 및 비즈니스 거리로 1931년 계획 도시 뉴델리 기획이 입안되었을 때부터, 신도시의 상업가로 자리매김한 이래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곳으로 유럽의 언 도시에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원형 건물은 방사형 도로에 의해 구획이 구분되고 도시의 부유층과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로 가득하다.
아그라센 키 바오리 Ugrasen ki Boli
옛날 물이 귀한 지역에서 물을 얻기 위해 땅을 깊게 파고 계단을 연결한 바오리(Baoli)를 만들었다. 건조지대에서 우물은 신성시되기 마련이라 힌두는 힌두대로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우물을 꾸미기 시작했다. 아그라센 키 바오리는 103개의 계단이 땅 아래로 이어져 있으며 이슬람 스타일의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인도 최대 규모의 박물관으로 5000년 인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200년에 이르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자 자민족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건설했지만 상당수의 인도 문화재가 영국의 박물관에 흩어져버려 영국에 인도산 유물의 반환을 요청하고 1947년 그렇게 마련된 1,000여 점을 대통령 궁에 전시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인더스 문명과 불교에 대한 설명과 관련 유적들은 꽤 훌륭하다.
후마윤의 무덤Humayun’s Tomb
무굴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으로 페르시아 출신인 그의 부인 하지 베굼이 지시에 따라 1565년 건설되었다. 페르시아 건축의 기본적인 틀을 창조적으로 변형 무굴 양식이라는 새로운 건축기법을 탄생시켰다. 후마윤의 무덤은 페르시아, 아프카니스탄 건축과 구별되는 무굴양식 최초의 건물이라는 평을 얻고 있는데 후마윤의 무덤으로 시작된 무굴 건축은 90년 후 타지마할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수많은 작은 정사각형으로 쪼개는 정원의 형태는 이슬람교도들의 낙원 사상을 품은 것으로 이슬람교는 사막에서 발생한 종교다보니 사방에서 흐르는 물의 존재야 말로 낙원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무덤의 주인공인 후마윤 외에도 그의 부인인 하지 베굼, 무굴의 마지막 황제 자리를 놓고 아우랑제브와 격돌했던 샤 자한의 장남 다라 시코도 이곳에 묻혀 있다.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다 사망한 인도인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으로 42m에 달하는 탑 전체에 약 85,000명의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1차 대전 당시 인도는 자발적으로 영국을 도왔다. 식민지 처지였으나 영국을 지원함으로써 전쟁이 종식되면 자치권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인도는 배신을 당해 85,000명에 달하는 인도인들의 피는 헛된 것처럼 되어버렸다. 건립 당시에는 당시의 영국 왕이었던 조지 5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동상은 인도 독립 후 철거 되었다.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술탄 꾸뜹 우딘이 1193년 델리의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기념으로 건설한 ‘승리의 탑’이다. 꾸뜹은 그의 생에 첫 번째 층 밖에 짓지 못했고 지금의 5층탑은 후대 왕들이 증축한 결과물이다. 1층~3층은 붉은 사망, 4층~5층은 대리석과 사암을 사용했다. 기록에 의하면 탑의 상층부는 지진으로 인하여 두 번의 복원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인도 최초의 모스크다. 1193년 힌두교 사원을 무너뜨린 그 자리에 지어졌으며 후대 왕들에 의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추가 되었다. 상당수가 폐허가 되어 버렸지만 화려한 사암 장식들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모스크 안뜰에는 7m높이의 철 기둥이 있는데 이 기둥은 꾸뜹 미나르가 지어지기 전 4~5세기 찬드라굽타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둥 내부는 철의 순도가 높아 2000년이 지나도록 전혀 녹슬지 않았는데 이 기둥을 만든 기술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
알라우딘 킬지에 의해 계획된 것으로 꾸뜹 미나르와 같은 모양이면서 높이는 2배인 승리의 탑을 짓고자 했지만 그의 생애 탑은 약 25m정도 밖에 완성되지 못했고 누구도 계속해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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