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중심 태국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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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세상을 날다
알고 떠나자/태국Thailand

동남아시아의 중심 태국Thailand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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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Thailand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른 나라들이 전쟁과 고립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태국은 수많은 방문객을 맞고 있었으며 여행하기에도 아주 편리한 나라도 자리 잡게 되었다.

수많은 고대 왕국들은 태국 북부 지방 전역에 다채로운 문화를 남겨 놓았으며 현재의 태국 국경 너머까지도 타이족의 문화가 널리 퍼지도록 했다. 크메르족,크메르족, 윈난인들도 오늘날의 타이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이사 외교의 중심지이자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태국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첫 관문으로 손색이 없다.

 

국가 명칭

Kingdom of Thailand 태국어로는 쁘라 텟 타이, 자유의 나라라는 뜻이다.

 

국기

1971년 처음 사용된 현재 국기는 붉은색은 피, 흰색은 불교, 푸른색은 왕을 뜻하며 국민, 불교, 국왕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상징한다. 과거 씨암Siam 시절에는 붉은 바탕에 길조로 여기던 백색 코끼리가 그         려져 있었다.

태국 국기 과거와 현재

 

수도

방콕Bangkok(끄룽텝 마하나콘)

 

시차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민족

인구 75%다 타이족이고 화교는 14%, 소수민족으로 크메르, 라오, 북부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고산족이          있다.

 

언어

공식 언어는 태국어 전 국민이 태국어를 사용한다. 북부 산악 지역의 소수민족들만 고유 언어를 사용할          뿐이다.

 

통화

화폐 단위는 ‘밧Baht“

 

종교

전형적인 남방불교 국가로 국민의 95%가 불교는 믿는다. 종교 자유는 인정되지만 모태 신앙으로 불교가     생활의 중심이 된다.

 

기후

아열대 몬순 기후로 1년 내내 덥다. 온도 변화 없이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로 일교차마저 거의 없다.   1년 중 가장 쾌적한 시기는 11~2월로 비가 내리지 않고 태국 북부는 선선한 선선한 바람 탓에 기온이     20아래로 내려간다. 가장 무더운 날씨는 3~%월로 태국의 여름으로 동남아시아 아열대 기후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5월부터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아 10월까지 우기가 이어진다. 장마나 태풍처럼 며칠씩 비가 오는 것이 아닌 스콜성 강우가 하루 한두 차례 지나간다.

 

태국의 역사

짜오프라야 강 중부에서 시작해 태국 만일대로 발전한 태국은 쑤코타이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4번째 왕조가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국가인 만큼 역사적인 자부심이 강하다

 

크메르Khmer

자야바르만 2세를 시작으로 성립된 크메르 왕국(캄보디아)13세기까지 동남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한 거대한 나라를 세웠다. 앙코르 와트를 기점으로 베트남의 메콩 델타부터 태국과 라오스, 말레이 반도 일부까지 점령하였다. 태국 중북부의 피마이, 파놈 룽, 롭부, 쑤코타이, 핏싸눌록이 당시 크메르 영토에 속해 있었다. 크메르 제국은 자야바르만 712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13세기 이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쑤코타이Sukhothai

1238년 타이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로 크메르 제국이 약해진 틈을 타서 인드라딧야 왕자가 이끄는 군대가 독립을 쟁취했다. 쑤코타이 초기에는 도시 국가 형태의 작은 나라였으나 람캉행을 기점으로 문자가 창조되고 라 오스의 루앙프라방을 포함해 태국 중북북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람캉행 대왕 이후 뚜렷한 발전을 보이지 못하고 그의 손자 리타이 왕을 거치면서 태국 중부에서 성장한 아유타야 왕국에 흡수되며 지방의 소도시로 전락했다.

 

란나왕국Lanna Kingdom

1296년 멩라이 왕이 건설한 나라로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 수도를 건설하며 탄생한 왕조다. 쑤코타이는 물론 버마(미얀마)의 바간 왕조와 유대를 강화하며 라오스 중북부까지 아우르는 주요 국가로 성장했다. 띠록 왕 때 불교의 영향 아래 많은 사원이 건설되었으며 15세기 후반 란쌍 왕조와 버마의 침략을 받으면서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아유타야Ayuthaya

1350년 우텅 왕에 의해 건설된 국가로 1438년 쑤코타이를 통합하며 태국의 두 번째 통일 왕국으로 발돋움했다. 400년간 동남아시아의 절대 패권자를 차지했으며 현재의 태국과 비슷한 영토로 확장했다. 아유타야의 초고의 번성기를 이끌었던 나라이 왕은 한때 중국과 인도는 물론 유럽과 교역을 할 정도로 강력한 왕국을 형성 세력이 약해진 크메르에게 이겨 앙코르 제국의 영토를 상당 부분 점령했을 정도였다. 17세기 후반 버마와의 전면전 끝에 수도가 함락되면서 왕족은 인질로 잡혀가 나라는 1767년 버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톤부리Thonburi

태국의 제3대 왕조로 탁씬 장군이 버마와 중국이 전쟁을 하는 틈을 타 짜오프라야 강 남쪽, 톤부리에 새로운 왕조를 건설했다. 새벽 사원(왓 아룬)과 왕궁과 왕실 사원을 건설했으나 톤부리 왕조는 정신질환까지 보이던 딱씬 장군은 부하 짜끄리에 의해 처형당해 톤부리는 단 한 명의 왕으로 단명하고 만다.

 

짜끄리Chakri

권력을 잡은 짜끄리가 수도를 랏따나꼬씬으로 옮기며 건립한 왕조로 1782년부터 22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태국의 네 번째 왕조다. 현재는 방콕의 일부에 해당하는 랏따나꼬씬은 강과 운하에 둘러싸인 인공으로 만든 섬 모양으로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였다.

짜끄리 장군은 라마티보디로 이름을 바꾸며 라마 1세로 등극하고 담마라자(불교 법륜에 입각한 법왕) 시스템을 도입하며 왕권을 유지했다. 라마 2세와 3세는 방콕의 주요 사원들과 건물을 완성하고 견고한 국가 기반을 다졌으며 3세는 중국과의 교역은 물론 유럽의 선박도 드나들 정도로 방콕을 수상 무역의 중심지로 변화시켰다. 27년간 승려 수행을 했던 라마 4세는 태국에 최초의 도로를 건설하고 유럽과의 무역도 확대했으며 태국의 교육과 법제도를 정비하는데 노력했다. 라마 5세는 태국의 현대화에 앞장섰으며 태국 최초의 병원, 우체국을 건설하고 태국 왕 최초로 유럽을 방문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태국의 독립을 지켜낸 인물로 짜끄리 왕조의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칭송받는다..

 

입헌 혁명과 민주주의

라마 7세 때인 1932년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150년간 지속되었던 짜끄리 왕조가 붕괴되면서 국왕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하고 상징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다. 1991년까지 19번의 쿠데타 시도가 거듭되며 혼란을 거듭하다가 민주당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1992년이 되자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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