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심 프랑스 FranceFrance
수도 파리Pais
통화 유로(€)
언어 프랑스어
시차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느리며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서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까지 서머타임이 적용된다.
종교 가톨릭,, 신교, 유대교, 이슬람교
국기 삼색기. 파란색은 파리를, 흰색은 왕정 시대의 국왕을, 발간색은 혁명의 피를 의미한다.
예술의 도시 파리paris
유럽의 중심인 파리는 무척 다양한 얼굴을 가진 도시다. 예술의 도시, 관광의 도시, 쇼핑의 도시 등 많은 수식어로 불린다. 수많은 영화와 TV, 사진을 통해 보아 온 파리의 온갖 랜드마크가 이미 식상할지 모른다. 보아도 보아도 끝이 없고,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는 도시 파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부터 세계의 건축을 이끌어가는 초현대식 건물까지 공존하고 세계의 모든 인종이 모여 있는 듯한 재미난 도시가 파리다.
샹젤리제 거리Champs-Elysee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불리는 샹젤리제는 파리의 가장 큰 랜드마크다. 개선문이 서 있는 샤를 드골 에투왈 광장에서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콩코드 광장까지 이르는 넓은 대로로 샹젤리제란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그리스 신화의 낙원을 의미하는 '엘리제'에서 따온 것이다. 본래 습지였던 곳을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드 메디치가 산책로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이후 조경가인 르 노트르가 정비했다. 조 다상은 샹젤리제에서 ‘원하는 걸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노래했고 파리가 배경인 영화 중 샹젤리제가 나오지 않는 영화가 없으며 영화인들은 공식, 비공식 행사도 이곳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나폴레옹이 승전이 기념물로 축조한 개선문이 샹젤리제 끝에 세워진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프랑스에서 가자 역사적인 광장, 오랜 병고 끝에 회복한 루이 15세를15 축원하기 위해 그의 기마상이 제작되었고 베르사유로 가는 길목인 이 광장에 상을 세웠다. 당시의 명칭 또한 ‘루이 15세 광장’이었으나 혁명과 함께 상도 철거되었다. 서북쪽의 샹젤리제와 동남쪽의 튈르리 정원을 가로로 이를 뿐 아니라 마들렌 대성당과 국회의사당을 세로로 연결하는 광장이다. 광장 중심에 있는 오벨리스크 석탑은 1836년에 이집트에서 선물 받은 것으로 한 쌍의 오벨리스크지만 운반의 문제로 하나만 옮겨왔다. 콩코르드 광장은 그 명칭의 변화만으로도 프랑스 근대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혁명 이후, 자유의 여신상과 단두대를 세워 ‘혁명의 광장’으로 불렸으나 대학살을 연상시키는 것을 우려해 1800년에 콩코르드로 개칭했다. 공포정치가 잠잠해진 틈을 타서 망명했던 루이 16세 의 동생이 루이 18세로 즉위하면서 잠시 ‘루이 16세 광장’으로 정정되었지만 1830년의 7월 혁명을 지나며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름을 굳혔다. 이곳에 설치된 단두대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약 8년간 1119명이었으며 그중에는 루이 16세를 비롯해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가 일족, 혁명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있다.
개선문 Triumphal Arch
나폴레옹 1세는 그의 군대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개선문을 건립했다. 체코의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의 연맹 군대를 맞아 9시간의 혈전 끝에 승리를 거둔 병사들을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높이 50m,50m, 너비 45m,폭 22m에 대형 아치 29.19m, 소형 아치 18.68m의 이 엄숙하고 장엄한 구조물은 건축가 샬그랭의 작품이다. 앤티크 예술에 도취되어 있던 황제의 취향에 따라 로마 예술 양식에 충실하게 설계했다. 1806년에 기공식을 올리고 1836년에 완공했지만 당시 유배 중이던 나폴레옹은 완성작을 보지 못했고 그의 유골만이 개선문 아래를 지나 앵발리드의 돔에 안치되었다. 이후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시신이 팡테옹에 안장되기 전날 밤 개선문 아래에서 애도의 불길을 밝혔고 1차 대전 승전 퍼레이드가 이곳을 지났다. 드 골 장군이 2차 대전의 종전을 일 년 앞두고 파리의 탈환고 프랑스의 해방을 선언한 곳도 바로 개선문이다. 개선문을 12개의 대로를 둘러싸여 있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거리는 단연 샹젤리제다. 상공에서 본 개선문이 1212 꼭지의 별을 닮았다고 해서 ‘별의 개선문’이라고도 부른다. 주변을 통칭해 에투알 광장 또는 프랑스 18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 드 골 광장이라 한다.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차가 많이 얽히는 로터리이므로 문 아래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하도를 이용해야 한다. 개선문 외관은 대형 양각 부조 4개, 액자형 음각 부조 6개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인들이 혁명 의지를 다룬 것인데 가장 유명한 것은 뤼드의 ‘1792년 의용병의 출정’으로 ‘라 마르세예즈’라고도 부른다. 이 조각에서 의용병을 이끄는 인물은 승리를 상징한다. 샹젤리제에서 개선문을 마주 보았을 때 오른쪽의 부조다. 아치 내부에 새겨진 이름들은 프랑스 대혁명부터 나폴레옹 1세 섭정 기간 중에 일어났던 혁명, 전투명과 그때 사망한 장교의 이름이다. 문 지하에는 1차 대전 참전 무명용사들이 안치되어 있으며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이들을 기리는 기념의식이 거행된다.
루브르 궁전Palace de Louvre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이 있는 궁전, 루이 14세가 17세기 말에 왕권을 베르사유로 옮기기 전까지 루브르 궁전은 프랑스 절대왕권의 상징이었다. 약 800여 년 동안 이어진 증축공사의 결과는 건축양식에서 잘 드러난다. 피라미드를 축으로 튈르리 정원 맞은편에 있는 정사각형 건물 쿠르 카레는 중세 르네상스 양식, 센 강과 리볼리 대로 쪽 두 날개 건물은 로맨틱 바로크 양식이며, 대로를 평형하게 따르는 파사드의 주랑은 로마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최초의 루브르는 12세기 말, 늑대로부터 시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필리프 오귀스트가 축조 했으며 감옥과 문지기의 숙소에 불과했던 이곳이 왕족의 거처로 거듭난 것은14세기 때였다. 궁전의 확장은 센 강을 따라 시작되었고 현재의 튈르리 정원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가로질러 계속되었다. 이후 루이 14세기 리볼리 대로 쪽 확장 공사를 재개하면서 현재의 쿠르 카레가 완공되었다. 궁전이 베르사유로 옮겨간 후 아카데미 회원들의 사무실과 유명 예술가들의 거처로 쓰이다가 1793년에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왕족들이 남겨둔 예술품과 혁명 기간 동안 압수한 귀족들의 재물 669여 점을 전시하기 위해서였다. 이후에도 계속된 궁전의 확장, 제정비는 나폴레옹 3세의 섭정 기간인 1880년에서야 마무리되었다.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등 약 4040만 점의 귀중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 대영박물관,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본래는 1190년 필립 오귀스트 왕이 북쪽으로부터 침략해오는 이민족들로부터 시떼 섬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건설하였는데 이후 16세기에 건물은 프랑수아 1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한 것을 시작으로 카트린 드 메디치,앙리 4세, 루이 13세, 루이 14세,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3세까지 계속 확장되고 개발되다 프랑스혁명 이후 1793년 미술관으로 변모하였다. 박물관의 소장품을 프랑수아 1세가 수집했던 이탈리아 회화 12점에서 시작해 다른 나라로부터 부채 대신 받은 작품들과 나폴레옹이 원정국에서 약탈한 예술품, 대대적인 예술품의 매입 등으로 계속 늘어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은 ‘궁전 전체를 미술관으로’라는 프로젝트를 발표 1997년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태어났다.
루브르의 피라미드Pyramide du Louvre
루브르 박물관의 정문이자 나폴레옹 뜰의 중앙에 세워진 유리 피라미드는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작품으로 1989년에 완공되었다. 1981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 국제 콩쿠르 과정을 생략하고 건축가를 직접 선정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루브르 궁전의 정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피라미드는 꼭짓점까지의 직전 높이가 21.64m, 정사각형인 바닥면은 35.42m를 이룬다 전체는 95톤에 달하는 철근이 지탱하고 있으며 그 사이는 603개의 마름모와 70개의 삼각 유리로 구성된다. 루브르 궁전은 1970년대까지 경제부처와 미술관으로 나누어 사용했는데 1981년 대통령직에 오른 미테랑 대통령의 의지로 궁전 전체가 미술관으로 되었다. 그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루브르를 세계 최고 최대 박물관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피라미드 역시 이에 속하는데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복잡한 박물관 내부를 하나로 모아주는 입구 역할을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많은 관람객을 효과적으로 입장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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