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란 단어가 붙는 모든 행위에는 설렘과 특별함이 묻어 있다.
처음 여권을 만들고 간 해외여행이자 배낭여행지는 ‘인도’였다. 여행을 좀 해본 사람들이 간다는 그곳을 ‘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선택했다. 어떠한 일이 생길지에 대한 걱정보다 낯선 도전에 대한 설렘만 가득했던 여행이었다.
입국심사에서 궁핍한 영어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기만 했다. 직원의 반복되는 질문에도 웃기만 하는 나의 모습을 기막혀하며 헛웃음과 함께 입국도장을 찍어주는 것으로 인도에 온 것을 환영해주었다. 내가 소심하고 우물쭈물하게 받아든 여권은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의 증명이었다.
인도 공항을 나오니 악명 높은 델리의 매캐한 공기 속에서 커리 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보다는 오고 싶었던 곳에 대한 기쁨과 호기심으로 심장은 두근거렸다. 그것도 잠시 어둠에 피부색이 묻혀 도드라지지 않는 얼굴 형체에 유난히 큰 눈에 검은 눈동자가 동굴 같은 인도인들이 나를 포위하자 낯선 공포감이 밀려왔다. 여행자에게 보이는 도를 넘는 적극적 호객행위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숱하게 들어온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사기 행각은 알고 가도 당하고, 안심하면 더 크게 당하게끔 그들의 수법은 날로 진화되어 예습의 의미를 상실시켰다.
서투른 첫날을 보낸 뒤 본격적 여행을 위해 나선 길에는 온갖 쓰레기가 난무하며,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이 지뢰처럼 널려 있었다. 신발을 신고도 조심스러운 그 길을 맨발로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인도인들과 사람보다 더 주인행세를 하는 소들 사이에서 곡예하듯 길을 걸어야 했다.
기존의 교통수단 외에 오토바이와 자전거 릭샤, 소와 코끼리가 공유하는 도로를 지나 유명 관광지에 도착하니 맨발에 때가 낀 손톱을 가진 아이들이 나를 반겼다. 나름 배짱 좋은 아이 한명이 먼저 손을 내밀면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나의 길을 가로막았다. 손을 내밀고는 있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은 표정으로 가진 것이 더 많은 너에게 덜 가진 우리가 베풀 기회를 준다는 자비의 뻔뻔함까지 곁들인 얼굴이다. 나의 미안한 거절을 거절하며 끈질기게 쫓아오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치듯 사원으로 들어가니 해탈한 현자처럼 근엄하게 말하지만 구걸하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수도자가 있었다.
바라나시 강가에서는 시체 태우는 불길이 그칠 줄 모르고 그 냄새를 맡고 개들이 몰려들어 남은 시체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타다 남은 시체를 거침없이 강가에 버리고 한 쪽에선 그 물로 목욕을 하고 심지어 마시기까지 하며, 다른 쪽에서는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바라나시의 미로 같은 골목들처럼 머리는 혼란스럽고 이성적 판단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가난이라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질 것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그 가난을 온몸으로 떠받치며 살아도 결핍에 대한 열등감은 없었다.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냐’는 우문에 ‘왜 그래야 하는지’ 현답을 제시하기도 했다. 부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다리로 페달을 밟는 자전거 릭샤꾼에게 ‘힘들지 않느냐’ 물으니 ‘이런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고 자신의 처지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기차의 연착은 물론이거니와 버스표, 기차표 하나를 사더라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밥을 먹으러 가든, 음료수를 하나 마셔도 나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으로 여행을 이어나갔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마냥 설레어 서툴게 끝나버린 서글픈 첫사랑 같은 곳이 인도이다. 설익은 감정에 달뜨고 혼자 환상을 품으며 서운해하던 첫사랑처럼 어설픈 잣대로 재단하며 유쾌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들로 그들을 품지 못한 채 여행을 끝낸 것 같아 아쉽다. 첫 여행이라 기대하고 실망하며, 미숙한 여행자라 받아 들이지지 못한 그들의 삶에 대해 미련이 남는다. 지혜가 없는 지식으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 나의 교만을 반성하게 한다. 실패한 첫사람처럼 아픈 그리움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인도를 그리며 사진첩을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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