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낯설어서 나는 외로웠다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다가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나의 본성이나 성질이 새로운 환경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피라미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묵고 있는 시내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마이크로버스를 갈아타야하는 복잡하고도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시내에서 택시를 타기에는 요금이 만만치 않아 가난한 여행자는 지하철을 타고 간 후 택시를 타기로 했다. 지하철을 내리니 택시기사들이 알아서 나를 호객을 해주었고 요금도 바가지를 씌우지 않아 택시를 탔다. 10분쯤 시간이 지나자 택시기사가 ‘낙타, 사무실’을 운운했다. 영업행위를 하는 듯 열심히 설명하는 택시기사는 나의 비루한 영어실력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나에게 열과 성의를 다해 설명했다. 눈치로 피라미드의 낙타를 타라는 말 같았지만 그것마저도 확신이 없어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피라미드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지만 다른 길로 택시는 움직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은 낙타가 줄지어 서 있는 사무실이었다. 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리면서 낙타에는 눈길도 주지 않음으로써 내 의사를 확실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뒤통수에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느낌상 욕설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단어들이 들려왔다. 택시기사는 나를 낙타사무실로 데려다 주고 수수료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나의 침묵이 긍정의 대답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택시비를 지불 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들의 말도 듣지 않은 채 나의 길을 가는 내게 그들은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 나를 반겨주던 사무실 직원까지 합세하여 무차별 폭언을 해댔다. 적당히 하다가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줄기차게 쏘아대는 그들의 일방적인 언행에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고 억울함까지 밀려들었다. 길 가던 현지인에게 피라미드 가는 길을 묻는데 그 현지인에게도 소리를 지를 때는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버렸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그들의 소음과도 같은 말소리에 태어나 욕이라고는 한 번도 안 해본 내가 그들을 향해 한국말로 질펀한 말들을 순식간에 쏟아냈다. 듣기만 하고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말들을 미친 듯이 풀어내자 그들은 그제서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피라미드를 향해 걸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욕을 할 줄 모른다고 착각한 것은 부당한 일 앞에서 참거나 회피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 했었다는 것을.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뒤늦게 밀려오는 창피함과 놀라움과 미안함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조용했다. 여행하는 동안 그들이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얼굴은 수줍은 미소로 가득했으며 조곤조곤한 말소리처럼 움직임마저 나직한 사람들이었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갖다 주었다. 나는 분명 메뉴판을 가리키며 음식을 주문했는데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다 먹고 난 후 계산서를 보고서야 내가 주문한 음식이 아니란 걸 알았다. 웬만하면 값을 치를 법도 한데 내가 주문한 음식 값과 세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아울러 내 실수가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에 나는 주고 싶지 않았다. 식당 직원은 낮은 목소리로 여전히 친절하게, 먹었으니 지불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나도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론 나지 않는 실랑이가 오갔고 결국 내 뜻을 강하게 전달 한다는 게 ‘당신 실수잖아’ 하며 큰소리로 버럭 하고 말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나온 버럭에 나도 놀라 멈칫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놀란 직원이 서둘러 ‘yes. O.K’를 말하며 돌아서 가는 상황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지만 순박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제대로 풀어 본 적 없는 내 속의 화들이 온전하지 못한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나마저도 낯설어서 나는 문득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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