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만달레이 근교 – 아마라뿌라/잉와/사가잉/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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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떠나자/미얀마Myanmar

만달레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만달레이 근교 – 아마라뿌라/잉와/사가잉/밍군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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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달레이 근교 – 아마라뿌라/잉와/사가잉/밍군

만달레이 근교의 아마라뿌라, 잉와, 사가잉, 밍군 지역은 모두 버마의 마지막 왕조인 꼰바웅 왕조의 도읍지였던 곳이다. 당시 조성된 화려한 사원과 유적지 옛 왕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마라뿌라amarapura

고대 팔리어로 불멸의 도시라는 뜻의 아마라뿌라는 꼰바웅 왕조 기간 동안 두 번이나 수도였던 곳으로 꼰바웅 왕조 6대 왕인 보도파야 왕에 의해 1783년 처음 수도로 정해졌다. 뒤를 이은 바지도 왕이 1821년 수도를 아마라뿌라에서 아바로 옮겼으나 1842년 타라와디 왕에 의해 다시 아마라뿌라로 옮겨졌다. 1859년 민돈 왕이 만달레이로 수도를 천도하는데 이때 민돈 왕은 건축자재를 재사용하기 위해 궁전과 도시의 벽을 모두 해체해 옮겨 아마라뿌라에는 왕실의 건축물은 남아있지 않고 일부 사원과 해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마하간다용 짜용Mahagandhayon Kyaung

1,500여 명의 승려가 수행을 하고 있는 미얀마 최대의 수도원으로 1015분에 신도들이 시주한 음식을 스님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대중공양을 보기 위해 많은 오전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간다.

 

우베인 다리U Bein Bridge

아마라뿌라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이다. 미얀마를 소개하는 풍경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우베인 브리지는 타웅타만 호수를 지르는 나무다리로 티크 나무로 지어진 다리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리의 이름은 다리를 건설한 사람의 이름으로 1805년 아마라뿌라의 시장이었던 우 베인이 잉와 왕궁 건설에 사용하고 남은 목재를 이용해 건설했다고 한다.

우베인 다리

 잉와Inwa

잉와는 ‘호수의 입구라는 뜻으로 첫 번째 통일 왕조인 버강 왕조 이후에 북부 지역에서 생긴 샨족의 왕국, 잉와 왕조의 수도였다. 1364년 샨족 출신인 따도민뱌 왕이 왕조를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1555년 통일 미얀마 왕조시대를 연 따웅우 왕조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나 따웅우 왕조에 반란을 일으킨 몬족이 잉와를 차지하게 된다. 1752년 몬족을 진압하고 꼰바웅 왕조를 건국한 알라웅파야 왕에 의해 잉와 지역이 재건되었고 대를 이은 바지도 왕이 1823년 잉와를 수도로 사용했으나 1839년 대규모 지진으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도시가 파괴되자 타라와디 왕은 1842년 아마라뿌라로 수도를 천도하게 된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탓에 현재는 옛 수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과거 버마 군주시대에는 새로운 왕이 왕위에 오르면 이전 왕이 도읍지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새로운 지역으로 정해 왕궁을 옮겼다. 수도를 달리해야 기존 왕과 차별화를 함으로써 왕권 강화에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차차 관습처럼 굳어져 수도를 옮겨야 왕조의 국민들도 태평천하를 누린다고 믿었으며 그로 인해 같은 왕조라 하더라도 왕마다 수도를 달리해 만달레이 주변에는 유난히 도읍지가 많다.

 

잉와 왕궁Innwa Palace

잉와 왕궁은 1364년 알라웅퍼야 왕이 쉐보에서 어와로 천도하면서 꼰바웅 왕조이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지만 1838년 대지진으로 더 이상 왕도로서의 구실을 못하여 버려졌지만 미얀마 고전문화 복원회에서 전통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곳에는 27m의 기울어진 워치타워가 있는데 19세기 초 미얀마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마하 아웅메 본잔Maha Aungmye Bonzan Monastery

바지도 왕의 부인인 메누의 명에 의해 1818년 목조 건물 형식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꼰바웅 왕조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소박하다.

 

사가잉Sagaing

사가잉은 에야와디 강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여러 부족과 왕조를 거쳐 가면서 발전해왔다. 9세기 버마족이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으며 11세기 중반에는 바강 왕국의 아노라타 왕에 의해 바강의 일부가 되었다. 바강이 멸망하고 1315년 아틴카야 왕이 사가잉 왕국을 건설하며 본격적으로 발전, 아바 왕조, 따웅우 왕조의 통치를 받다가 나웅도지 왕에 의해 잠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사가잉은 미얀마 불교와 수도원의 중심지가 된다.

 

사가잉 힐Sagaing Hill

240m 높이의 사가잉 언덕은 불교사원과 파고다로 가득하다. 버강 왕조가 망하고 난 뒤 어와 왕조와 스가잉 왕조가 건국된 1300년대부터1300 파고다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꼰바웅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유적지와 불교 명상의 장소로 주목받은 곳이다. 사가잉 언덕에 조성된 불교 사원은 불교 연구를 위한 사원부터 명상센터까지 있으며 언덕 정상에는 사가잉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1312년에 이 지역의 장관이었던 뽄야에 의해 지어진 순우뽄야신 파고다가 있다.

사가잉 힐

 밍군Mingun

밍군은 작은 강변 마을이지만 세계 최대의 전탑인 밍군 파고다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밍군 벨, 아름다운 신뷰미 사원이 있다.

 

밍군 파고다Mingun Pagoda

꼰바웅 왕족을 건국한 알라웅파아의 아들 보도파야는 왕위에 오르자 세계에서 제일 큰 파고다를 건설하기로 한다. 수많은 노예가 동원되었는데 노역을 견디다 못한 노예들이 라카잉 주의 북쪽, 인도의 아쌈 지역으로 달아났다.. 왕의 군대는 도망친 노예를 추격하면서 인도 국경을 넘게 되고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이를 빌미로 버마 전쟁을 선포한다. 그 후 33 차례의 버마-영국 전쟁을 치르고 참패한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원래 계획상은 152m 높이였으나 1797년 공사가 중단되면서 100m 높이에서 멈췄다. 만약 파고다 완성되었다면 단일 규모로 세계 최고 높이의 사원이 되었을 것이다.

밍군 파고다

 밍군 벨Mingun Bell

1808년 꼰바웅이 도도파야 왕에 의해 만들어진 현존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동종이다. 지름이 4.8m, 높이가 3.6m에 이르며 무게는 90톤으로 밍군 파고다가 완성되면 그 안에 설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신뷰미 파고다Hsinbyume Pagoda

보도파야 왕의 손자인 바지도 왕자가 아직 왕이 되기 전 1816년 그이 첫 아내인 신뷰미 공주를 기억하기 위해 세우 파고다이다. 신뷰미는 출산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흰색 테라스로 장식된 이 파고다는 입구에서 정상까지 총 7층으로 된 테라스가 있는데 수미산을 상징하는 힌두이즘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유적지이다.

신뷰미 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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