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다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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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세상을 날다
여행의 단상

죽음을 기다리는 집

by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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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갠지스 강이 있다면, 네팔에는 마그마티강이 있다. 마그마티강은 인도 갠지스 강의 지류로 인도에서도 성지순례를 올 정도로 힌두교도들에게 성스러운 강이다. 마그마티 강에도 인도의 갠지스 강처럼 화장터가 유명하다. 6곳이나 되는 화장터에서는 연신 시신을 화장하는 연기로 가득하다. 여기까지는 인도의 갠지스 강과 다를 바 없는데 이곳에는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힌두교의 장례 예법은 사망 후 24시간 이내 화장을 해야 고통스러운 윤회를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화장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미리 와서 죽을 때는 기다리는 것이다.

 

내일도 당연하게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허망하게 죽는 이들도 있고, 병상에 누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 따위가 무색하게 몇 년을 살다가는 사람들도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한 맹목적 기다림 속에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라오스 여행 중일 때 우기여서 수시로 비가 내렸다. 잠깐 내리는 비라도 스콜성 소나기라 엄청난 양의 물을 퍼부었고, 그로 인해 닦여지지 않는 도로는 진흙탕이었다. 방비엥에서 사륜 오토바이를 빌려 산속에 있는 폭포를 찾아 나섰다. 역시나 가는 길은 전날 온 비로 인해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으며, 물기를 잔뜩 머금은 흙은 질펀했다. 이륜오토바이가 지나가면 한 줄의 길이 움푹 패였고, 사륜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양 옆으로 두 줄의 굵은 길이 생겼다. 앞사람이 내어준 길을 따라가다 한 치라도 삐끗하면 사륜오토바이의 큰 몸체가 휘청거렸다. 등줄기가 싸해지는 아찔함과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한 스릴을 느끼며 폭포에 다다랐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폭포는 꾸밈없는 그대로의 자연이었고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돌아오는 길엔 두 번째라 안심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속력을 낸 것 같다. 갈 때와 다르게 오토바이는 자주 덜컹거렸고, 진흙탕에 빠져 멈추기도 했었다. 진흙탕인 길도 문제였지만 길 자체가 산길이다 보니 고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울퉁불퉁한 길은 도로의 방지 턱 같았으며 자동차보다 작은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높게 튕겨 올랐다. 몇 번의 꿀렁거림이 있은 후 속도를 이기지 못한 오토바이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반 바퀴를 회전하고 길 옆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쪽은 산이, 다른 쪽은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는 낭떠러지였다. 나의 오토바이는 낭터러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제 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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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스쳤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죽음을 예감한 순간 그동안의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성향과 경험임을 말하고 싶다.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으며, 느닷없는 나의 죽음에 놀랄 가족이나 지인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덤덤하게 죽고 싶지 않다가 아닌 죽음의 가능성만 떠올렸다.

다행히도 깎아지른 절벽도 아니었으며 풍성하게 우거진 수풀 덕에 계곡 아래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무거운 오토바이가 나의 몸을 짓눌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뿐 나의 정신은 멀쩡했다. 지나가는 현지인 장정 네 명이서 오토바이를 올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긴 했지만, 덤불에 긁히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나는 무사했다.

 

뒤늦게 긁히고, 멍든 상처를 보며 나의 가족과 지인들, 남겨질 사람들이 생각나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마주하게 될 나의 죽음이 그들에겐 문신처럼 새겨질 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기다리는 집의 사람들은 ‘언제’의 죽음이 아닌 ‘어떻게 떠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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