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불행
튀르키예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이스탄불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프린스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뷔위카다Büyük ada’섬이었다. 과거 터키 왕족과 귀족들의 유배지였다는 묘한 이력과 현지인들도 입을 모아 추천하는 섬이라 주저 없이 길을 나섰다.
던져주는 과자를 좇는 갈매기만 없었다면 강이라 착각했을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질러 도착한 섬은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있었다. 선착장 입구에 줄지어 선 가게들과 좀 더 편한 관광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마차들은 그곳이 유명 관광지임을 증명해 보였다. 자전거든 마차든 빌려 섬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뒤로 하고 튼튼한 두 다리와 정처 없이 걷는 자유로운 방랑자의 모습을 흉내 내며 수많은 호객꾼들을 뚫고 본격적인 섬 탐방길에 올랐다.
섬의 해안가로 난 헛갈릴 것도 없는 단조로운 숲길을 걷다보니 이스탄불 시내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유배지로 쓰였을 그 옛날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든 보이는 탁 트인 바다와 신선한 공기를 뿜어내는 나무들, 아기자기하게 지은 집들의 조화는 평화라는 단어가 그림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끔 관광객들의 번잡함 속에 섬의 평화로움이 풍기며 나를 치유해주는 듯했다. 유명한 정치인이 유배되어 살았다던 건축물은 사연과 상관없이 아름답기까지 했으며 귀양이란 형벌의 대가로 주어진 유배지 치고는 멋드러진 풍광과 고즈넉한 분위기 탓에 유배도 할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선뜻 스치기도 했다.
발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사람들 속에 휩쓸려 움직이다 도착한 곳은 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었다.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장소답게 막힘없이 사방으로 펼쳐진 해협과 옆의 또 다른 섬과 이스탄불까지 보이는 곳이었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지친 몸을 아무 곳에나 부려놓고 거칠 것 없는 바다를 한동안 넋을 놓고 감상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사월의 날씨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이스탄불과 다른 섬의 집들까지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듯 가까웠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맑은 날씨 덕에 이스탄불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이스탄불과 멀지 않은 거리에 유배지가 있다고 했을 때 처음엔 의아 했지만 그 순간 유배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떠나온 곳이 보이지만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형벌을 확인받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잊고 유배지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도 있을 법한데 멀지 않는 곳에 어디에다 눈을 돌려도 이스탄불이 보이고 자유가 보이는 순간 ‘넌 자유롭지 못해’를 확인사살 시켜주는 기분.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유배지의 생활을 불행하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비교하며 부러워‘만’ 하는 대상은 닿을 수 없는 존재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현실이지만 시기와 질투로 절망감을 느끼는 대상은 주변의 친구와 동료이다. 가까이에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매일 일깨워주는 만으로도 형벌로서는 최고의 유배지임이 확실하다.
SNS통해 남의 생활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요즘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다. 마냥 행복해 보이고 풍요로워 보이는 그들의 생활을 엿보며 그렇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그들과 나란히 하기 위해 무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평범하고 무난한 자신의 인생이 화려할 것만 같은 그들의 삶을 보며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폄하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한다. SNS가 없던 시절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로 인해 나의 인생은 나름 행복하다 생각하며 살다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임에도 오히려 불행과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움직이는 자에게 비교는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주저앉은 자에게 비교는 불행이라는 유배지에 나를 가두는 것이다.
2022.08.15 - [알고 떠나자/튀르키예Türkiye] -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가교 이스탄불 - 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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